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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ianca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5-08-06 22:53본문
감성채팅 좋아요 Manager! You're so RUDE!온라인 채팅 현장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양태 1. 인간과 의사소통 “You think you just fell out of a coconut tree? You exist in the context of all in which you live and what came before you.” 최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의 발언이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는 카멀라 해리스가 2023년 5월 10일, 백악관에서 연설한 내용 중 일부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람은 진공 상태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동체 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도덕적 공동체―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말처럼, 사람은 공동체 속에서 타자들과 함께할 때 비로소 사람답게 살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필수적인 것이 바로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은 “둘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 사이에 사실, 생각, 관념, 느낌을 포함한 정보를 나누는 과정”이라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의사소통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느낌을 나누고, 관계를 다져나간다. Holiday (1975)는 의사소통의 목적을 도구적 의사소통, 통제적 의사소통, 상호작용적 의사소통, 사적인 의사소통, 상상적 의사소통, 정보적 의사소통 등 일곱 가지 범주로 구분한 바 있다. 이러한 목적들은 다른 사람과 사회적 관계를 다져나가고, 우리 스스로의 기본적인 필요와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고, 협업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기호 체계 중에 언어가 가장 잘 발달되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기호 체계들은 언어 형식으로 변환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가 인간의 상호소통의 근간을 이룬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은 잘못이다. 이는 세상 모든 것이 (이론적으로는) 돈으로 변환될 수 있다고 해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돈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I.J. 겔브, 『문자의 원리』, 연규동 옮김,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2013, 13쪽. 말(speech)은 가장 흔히 사용되는 의사 소통 방법(mode)이지만, 모든 의사소통이 말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언어학자 I.J. 겔브가 언급했듯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의사소통 방법 역시 존재한다. 때로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으며 의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외면하는 것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기도 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감정을 드러내어 보이기도 한다. 선적인(linear) 텍스트 커뮤니케이션과 달리 이미지를 동반한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은 이미 각종 콘텐츠들의 범람과 함께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2. 의사소통과 매체여러 매체학자들이 언급했듯이, 의사소통의 매체(medium)는 사회 문화 구조와 사람들의 인지 체계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 해롤드 이니스는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인간의 정신을 구조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성된 문화의 성격을 좌우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특정 매체 자체가 문화의 성격을 규정지으며 변화시키고, 권력의 중심과 지식인층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매체는 특정 유형의 지식/담론들을 모아 새롭게 프레임화하여 편향을 일으키고 이로 말미암아 문명의 멸망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니스의 매체결정론은 다소 급진적이지만, 의사소통의 매체가 줄 수 있는 영향력을 시사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맥루한은 인터넷, 컴퓨터 , 텔레비전, 무선전신 등의 전자 기술이 세상을 주도하면서 변화시킬 것임을 예견했고, 지구촌(global village)을 예견했다. 현재 그의 주장과 예견들은 상당 부분 현실이 되었다. 맥루한의 주장 가운데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전자문화가 인류를 재부족화(retribalization)시킨다는 주장이다. 거대도시 속의 파편화되고 소외된 삶이 문자문화 시대의 삶의 양식이라면 부족사회 속의 공동체적인 삶이 전자문화 시대의 삶의 양식이라고 맥루한은 주장한다. 구술문화 시대와 문자문화 시대의 차이에 대한 맥루한의 주장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문자를 발명하기 이전에 인간들은 모든 감각이 균형 있게 동시에 작용하는 세상에 살았다. 의사소통의 기본 수단은 말이었으며, 개인주의도 없었고, 전문화도 없었다. 비문자적 인간들의 삶의 양식은 함축적이며, 동시적이고, 불연속적이고 그리고 문자적 인간의 삶보다 풍요롭다. 청각적이고 촉각적인 부족민들은 집단 무의식에 연결되어 있으며, 신화와 제의에 의해 꾸며진 신비한 통합적인 세상에 살았다. 그러나 문자적이고 시각적인 인간은 파편화되고 개인주의적이고, 설명적이고, 논리적이고, 전문적이고, 고립된 환경을 만들었다. 구텐베르크 이후 문자문화를 갖게 된 인간은 구술문화의 유기적 조화와 통합적인 감각을 상실하고 획일적이며 단조로운 삶의 양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문자문화가 쇠퇴하고 전자문화가 부상함에 따라 세상은 다시 예전의 부족사회와 같은 성격을 갖게 된다. - 이남호, 『문자제국쇠망약사』, 생각의 나무, 2004, 73-74쪽. 전자 매체는 우리의 일상적 삶을 급격하게 바꾸어놓았고, 또 계속 바꾸고 있다. 붓, 펜, 연필, 만년필, 볼펜, 사인펜, 타자기, 전동타자기, 워드프로세서, 컴퓨터 등으로 변화해 온 글쓰기 도구나 아니면 전화, 호출기, 무선전화, 휴대폰 등으로 바뀐 통신수단 등을 생각해보면 쉽게 그 변화를 짐작할 수 잇다. 도구의 변화는 꼬리를 물고 다른 변화를 유발한다. 컴퓨터는 언어를 바꾸고, 문체를 바꾸고, 글쓰기의 양식을 바꾼다. 글의 사회적 의미를 바꾼다. - 이남호, 『문자제국쇠망약사』, 생각의 나무, 2004, 25쪽. 마샬 맥루한은 인쇄 문자가 서구의 근대 문명을 낳았다고 주장하며, 이제는 전자 매체가 새로운 세계를 만들 것이라는 관점을 내세우며 포스트모던 이후 변화하는 세상의 여러 국면들을 전자매체의 산물로 치부한다. 전자 매체가 사람들의 인식 체계, 문화적 감각과 취향, 사유의 방식마저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이남호 평론가 탈근대 사회의 여러 징후들, “이성에 대한 불신, 영상매체의 대두, 사이버공간의 확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범람, 서사의 와해, 인문학의 몰락과 경영학의 번성, 문학의 쇠퇴, 지식과 책의 변질, 세계화, 경계의 소멸, 시공간의 내파, 사회 각 분야에서의 힘의 권위와 이동, 대중소비문화의 급증”을 따로따로 이해하려 했으나, 맥루한을 접한 후 이러한 정신없는 변화를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얻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사람들은 문자성이 강한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감각은 문자성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래픽성에 편함을 느끼도록 변했다. 전자영상 매체에 익숙해진 독자들의 감각적 취향은 가볍고 산뜻하고 새롭고 세련된 외모를 지닌 책을 원한다. 그 변화로 책은 그 위엄과 권능과 문화적 주도권은 잃었지만 우리 곁에 넉넉하게 존재한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탈이다.새로운 개념으로 넉넉하게 존재하는 책과 문자도 그 나름대로 존재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개념의 책과 문자 속에서는, 이전의 책과 문자 속에 담겨 있던 소중한 가치들이 소외된다.전자제국에서도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자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달라질 뿐이다. 책의 모습과 개념과 위상이 달라지고 문자의 기능과 역할도 달라진다. 책은 문자를 담으려 하지 않으며, 문자는 정보 전달의 수단에 그칠 뿐 이성적 사유와 인식의 도구가 되려 하지 않는다. 문자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책, 이성적 사유와 인식의 도구로서의 문자는 점점 사라져간다. - 이남호, 『문자제국쇠망약사』, 생각의 나무, 2004, 193-194쪽. 포스트모던 이후 우리 사회의 모든 변화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설명하려는 단 하나의 관점은 급진적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복잡하게 얽힌 인류의 문명사를 그리 단순한 논리로 재단해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매체론자들의 매체결정론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들더라도, ‘문학의 죽음’이나 ‘프라이버시의 종말’,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자극적이고 감각적으로 유혹하는 대중문화, 진지한 내면성의 공간이 사라지고 감각적 현혹과 말초적 황홀에 몰입하는 대중들. 진지한 사유를 벗어던진 채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인들과 도처에 범람하는 팬덤 정치. 반지성주의와 저질 콘텐츠의 범람 등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맥루한이 예견한 바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과거 우리의 시대 정신을 인도하고,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들은 대개 작가인 경우가 많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가고 목소리를 높이는 인물들은 작가들이었으며, 큰 작가와 큰 작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는 ‘인플루언서’들의 것이 되었다. 대형 유튜버부터 스트리머, 인스타그래머와 틱토커들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전 세대를 아우르며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제는 일반인들도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되길 희망하며, 초등학생이 바라는 희망 직업 1순위에 유튜버가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문화계의 새로운 교황이 된 인플루언서들은 클론 인간처럼 기형적으로 재생산된다. 보좌에서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이 끌어내려지고, 또 그만큼 새로운 콘텐츠를 들고 온 인플루언서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 분야에서도 시대가 갈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최근 초등교사들을 중심으로 요즘 학생들의 문해력과 단어 유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3년 동안 ‘읽기’ 분야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5.8%에서 14.7%로 3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현직 교사들이 꼽은 문해력 저하의 주된 원인은 ‘유튜브 등 영상 매체에 익숙해져서’(73%)와 ‘독서를 소홀히 해서’(54.3%)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결국 매체가 인지 능력 자체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이제 인쇄 서적에 기초한 문학은 그 권위를 잃기 시작했으며, 결과적으로 그 존재 자체를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그와 동시에 책을 읽는 능력이 사라지면서 시청각적 이미지,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 화면이 감성채팅 가장 효율적이고 매력적인 오락과 지식의 원천으로서 인쇄 서적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텔레비전, 컴퓨터 데이터 베이스, 복사기, 워드프로세스, 테이프, VCR 등은 인쇄술이 그랬던 것처럼 문학 및 문학적 가치와 공생할 수 없다. 정보를 획득하고 저장하고 전달하는 새로운 방식은 인쇄 서적으로 편향되고 문학으로 제도화된 창작과 독서의 개념이 사실상 지속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새로운 문맥 속에 등장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세계와 직면하는 문학은 사고방식과 행위 양식에 대한 압력을 실감한다. 기존의 문학이 붕괴한 데에는 신들의 황혼 이상으로 문화의 퇴화에 책임이 있다. 정치, 정보, 종교를 포함한 모든 것이 텔레비전을 통해 변질되고 아주 단순한 글을 읽는 것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며, 창조와 표절을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광고와 이미지가 언어를 장악하고 있다. - 앨빈 커넌, 『문학의 죽음』, 최인자 옮김, 문학동네, 1999, 20-21쪽. 영상매체 속에서, 인상과 이미지는 논리와 개념을 앞서며, 세부와 선적인 연결성은 쉽게 희생된다. 문자문화가 어려움, 고독함, 느린 자아 형성 등과 연관이 있다면, 전자문화는 쉬움, 즉각성, 상호성, 감각적 자극 등과 연관이 있다. (중략) 한편 전자문화 속에서는 정보와 내용의 성격도 달라지고, 정보 전달의 기본 과정도 기계적인 것에서 전자적인 것으로 바뀐다. 이제 우리는 독서방식의 변화가 우리의 정신적 삶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 것인가를 주목해야 한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실제 현실을 체험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전자문화와 문자문화는 불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가령 전자매체에 매우 익숙한 사람이 동시에 탁월한 언어능력을 지니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매클루언에 의하면, 매체는 곧 메시지이며, 매체의 변화는 삶과 문화의 바탕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문자문화의 쇠퇴 속에서 가장 먼저 목격되는 현상은 문학의 쇠퇴이다. 문학은 이미 30여 년 전부터 ‘소설의 죽음’이나 ‘저자의 죽음’이라는 말로 그 쇠퇴가 증언되었다.문학의 죽음에 대한 이러한 진단은 그대로 독서의 위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전자문화 속에서 근대적 개념의 문학도 독서도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다. 전자시대의 독자들은 ‘창 앞의 여자’이며, ‘DMB를 든 남자’이다. 이들은 문자적 성격에 불편함을 느끼는 전자인간들이다. 아마도 이 점이 21세기 독서론의 중요한 변수가 아닌가 한다. - 이남호, 『문학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현대문학, 2012, 79-80쪽. 활자로 빽빽한 책은 거의 절판되고, 세계에 대한 진지한 사유 없이 감성적인 글과 삽화로 가득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며 웃는 곰돌이 캐릭터 표지에서는 이성의 죽음이 여실히 느껴진다. 그가 말하는 행복은 깊이 있는 고찰과 진지한 사유를 집어던진 말초적 쾌락과 엑스터시에 가까운 듯하다. 이미 감각적이고 화려한 인상과 이미지는 고리타분하고 지난한 논리와 사유를 가뿐히 제치고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이제 사람들은 책다운 책과 그저 형태만 책인 책을 애써 구분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또 책을 책으로 만드는 고독한 내면적 고뇌의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도 점점 줄어들고 동시에 그런 과정의 의미를 제대로 존중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도 점점 약화된다. 또 책과 관련된 지식인의 기득권과 권위가 별로 의미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책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또 책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져가는 상황의 징후들이다. 그 상황은, 달리 말하면, 전자문화적 상황이다. 전자문화는 문자문화를 낯설게 만들고 전통적인 책을 낯설게 만든다. 그리고 책다운 책과 책답지 못한 책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 전자문화 시대에 문자문화는 터전을 잃는다. 그에 따라 문자문화의 핵심인 책의 성격이나 위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유명한 축구 스타의 책이라 할지라도 전자문화가 책의 위상을 흔들어 놓고 또 지식인의 위상을 흔들어놓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영원한 리베로』가 독서 프로의 주제도서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홍명보의 자서전이 독서 프로의 주제도서가 되고 또 지식인들이 나와서 그 책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한 것에서 다시 한번 문자문화의 패퇴(敗退)를 확인할 수 있다.장원재 교수의 축구 칼럼과 홍명보의 자서전 『영원한 리베로』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현상은, 글과 책이 다른 인기 분야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진다는 점이다. 축구 칼럼은 축구에 의존하고, 『영원한 리베로』는 축구 스타 홍명보의 인기에 의존한다. 영화나 드라마에 의존하는 문학작품도 늘고, 뉴스나 방송에 의존하는 책도 점점 많아진다. 이것은, 과거에 글과 책이 독자적인 힘을 과시하며 다른 분야에 크게 영향을 끼치던 때와는 아주 다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책이 지닌 독자적 힘의 생산자인 문인이나 지식인의 위상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과거 지식인들이 담당했던 사회적 역할을 월드컵 기간 동안에는 차범근이 대신하여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이끌어주었다는 점, 각계각층의 사람들 특히 전문가나 지식인들까지도 히딩크로부터 배워야 한다면서 그를 우리 사회의 최고 사상가, 지도자로 추켜세운 일 등도 거의 유사한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전자 시대에는 문화도, 책도, 지식인도 속화(俗化)되거나 대중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2002년 6월 4일은 한국팀이 월드컵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날이다. 폴란드 팀을 2:0으로 이긴 이 승리를 기폭제로 월드컵의 열기에 불이 붙었다. 사람들은 축구 경기에 매료되기 시작했고, 승리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으며, 또 다른 승리의 기대감에 가슴 부풀었다. 그러나 같은 날,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서점이며, 우리나라 서점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종로서적이 최종 부도 처리되었다. 월드컵의 승리가 찾아온 바로 그날 종로서적은 망해버린 것이다. 월드컵에서의 최초 승리와 종로서적의 최종 부도가 같은 날 발생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앞서 살핀 대로 월드컵이 전자 문화의 세상이라면, 서점은 가장 문자문화적인 세상이다. 2002년 6월 4일,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두 개의 사건, 즉 월드컵에서의 최초 승리와 종로서적에서의 최종 부도는 하나의 사건일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패권이 문자문화에서 전자 문화로 넘어갔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며,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사라지고 마르코니 성운이 나타난 것을 상징하는 사건일 수 있다.오늘날 날로 발전하는 전자 기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월드컵 현상은 그렇게 바뀐 세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전자문화가 혼자서 월드컵 현상을 만든 것은 아니겠지만, 월드컵 현상의 바탕에는 전자문화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좀더 강하게 말한다면, 월드컵 현상은 전자문화적 현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전자문화는 상당 정도 문자문화와 배타적이다. 전자문화의 확산은 문자문화와 그것이 배태한 많은 근대적 가치들을 소외시킨다. 지식인들이 월드컵에 대해서 어떤 당혹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바로 월드컵 현상의 전자문화적 성격 때문인 것 같다. 지식인들은 젊은 인터넷 세대들과는 달리 문자적 인간이다. 문자적 인간 가운데서도 특히 문자문화의 세례를 강하게 받은 인간들이다. 월드컵의 열기는 지식인들마저 정서적, 감정적으로 매료시켰다. 그것은 그들에게 낯선 것이고 더 나아가 그들의 사유와 삶의 바탕을 흔드는 것이지만, 또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앞으로 전자문화가 지배하는 포스트 월드컵의 세상에서 지식인은 어떤 정체성을 지니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월드컵이 지식인들에게 남긴 화두일지 모른다.- 이남호, 『문자제국쇠망약사』, 생각의 나무, 2004, 87-90쪽.3. 입말과 글말앞서 살펴보았듯이, 언어 사용과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구현매체(medium)은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본고에서 언어 사용의 구현 매체라 함은 언어가 운용되는 매체가 입말인지, 기호인지, 몸짓 시늉인지, 글말인지, 인쇄물인지, 아니면 혼합된 것인지 여부를 가리킨다. 또한 구현매체와 언어 사용이 일어나는 곳인 장면(scene)과 결합한 상의어로서, 현장(sett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먼저, 입말 현장은 의사소통하면 가장 쉽게 떠오르는 현장이다. 입말 현장에서는 보통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하거나 전화를 통해 이야기한다. 대화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대면이고, 그 다음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전화 혹은 영상 통화다. 잡담이나 회의, 혹은 그밖에 다른 대화는 대개 입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입말 현장에서 대화를 할 때는 둘 이상의 대화 참여 당사자들이 모두 ‘자유로운 발언 기회의 교환’을 획득하게 된다. 일상적 대화에서는 누구나 발언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발언 기회를 얻기 위해 별도의 형식적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마치 중국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그 식탁에 앉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원형 턴테이블을 돌려서 본인이 먹고 싶은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본고는 이러한 일상적이고 자유로운 대화 현장을 ‘원탁의 현장’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반면 발언기회가 극히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한 교수가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나,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말하거나, 학생이 나와 청중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행위를 생각해보자. 이때는 청중들이 발화 도중에 갑자기 끼어들어 방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현장을 ‘무대의 현장’이라고 일컫고자 한다. 또다른 예시로, 발언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특정한 요식 행위, 감성채팅 형식적 절차를 거쳐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한 정치인이 기자 회견을 열었다고 가정해보자. 기자들은 자유롭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손을 들어야 하고, 정치인이 많은 기자들 중에서 자신을 지목했을 때에야 비로소 자기 소개를 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법정에서 변호사와 검사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은 아무렇게나 변론을 준비하거나 피고인을 심문할 수 없다. 판사의 결정 혹은 법정에서의 절차에 따라 발언 기회를 얻고 나서야 발언할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대화 현장을 ‘기울어진 탁자 현장’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앞서 설명한 입말 현장에서의 의사소통 유형을 소통 방식과 대화 참여자들이 발언 기회를 어떻게 획득하는지를 중심으로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의사 소통 유형예시소통 방식발언 기회원탁의 현장일상적인 대화쌍방향적 의사소통교대됨자유롭게 교대됨무대의 현장강의, 발표, 연설일방향적 의사소통교대되지 않음기울어진 탁자 현장기자회견, 변론쌍방향적 의사소통교대됨형식적 절차 필요the language of face to face conversation is the basic and primary use of language, all others being best described in terms of their manner of deviation from the base. I assume that this position is neither particulary controversial nor in need of explanation. 얼굴을 마주 보는 대화의 원리가, 기본적이며 1차적인 언어사용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그 기본으로부터 벗어나는 방식에 비춰 서술되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이런 입장이 특별히 논란거리도 되지 않으며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가정한다. - Fillemore, C. (1981). Pragmatics and the description of discourse. In P. Cole (Ed.), Radical Pragmatics, p. 152. New York : Academic Press 위에 인용된 Charles Fillmore의 말을 보듯, 의사소통 행위자들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느끼는 의사소통은 입말 현장 중에서도 얼굴을 마주 보는 대화에 의한 의사소통일 것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의사소통 현장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현장성’과 ‘즉시성’이다. 전화나 온라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대면하는 일상적인 입말 현장에서 대화 참여자들은 같은 물리적 환경에서 서로를 보고 들을 수 있다. 즉, 어조,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 휴지, 얼굴 표정, 몸짓, 제스처 등 음성 텍스트 외에 수많은 요소들이 개입한다. 또한 대화 참여자들 간의 의사소통 매체인 음성 텍스트는 발언 행위 이후 즉시 사라져 버린다. 또한 그들의 행위는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의사소통 행위에 참여하는 대화 참여자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자신의 행위를 꾸려, 어떤 행위를 언제 취할지 스스로 결정하여 실행하여야 한다. 반면 글말 현장에서의 의사소통은 입말 현장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글말 현장에서의 의사소통 행위는 입말 현장과 달리 대화 참여자들이 서로 다른 물리적 환경에서 의사소통을 한다. 가령,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는 한국의 대학생은 플라톤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독자로서의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글말 현장에서 대화 참여자들은 서로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그렇기에 글말 현장에서는 입말 현장에 동반되었던 수많은 반언어적·비언어적 기호들이 거의 동반되지 않는다. 글말 현장과는 달리 힌트들이 제시되지 않기에, 독자들은 필자의 의도를 오직 텍스트 내에서만 찾을 수 있다. 물론 필자 역시 문자 자체를 통해 나름의 내포적 의미(connotation)를 전달할 수도 있다. 내용에 따라 글자의 크기를 다르게 한다든가, 적절한 폰트를 골라 쓴다든가, 글자의 색을 바꾸는 것이 그 예다. 어린이 행사 팸플릿에서 궁서체 대신 귀여운 폰트를 고른다든가, 공포영화 포스터에 핏빛을 연상시키는 붉은 글자를 쓰는 것은 글말 행위에서도 비언어적 기호가 동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는 극히 제한적인 예시일뿐더러, 입말 현장에서보다 그 쓰임이 대단히 제약적이다. 필체가 주는 정보가 인간 목소리를 이기기란 요원해 보인다. 영화 속 배우의 독백을 들으며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을 떠올려 보자. 관객들이 감동을 받은 이유는 비단 음성 텍스트의 내용뿐만은 아니다. 내용을 담는 그릇, 즉 배우의 말투와 발성,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 등의 형식이 내용과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인지적 정보뿐만 아니라 감성도 글말보다 입말 현장에서 훨씬 잘 전달되는 듯하다.글말 현장에서는 의사소통의 매체인 텍스트가 사라져버리지 않고 남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필자가 쓴 글을 몇 번이고 연거푸 다시 볼 수 있다. 또한 의사소통 참여자의 행위가 기록되고 남으므로, 글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전혀 다른 물리적 환경에서 의사소통 행위가 가능한 글말 현장의 특성도 이 덕분이다. 의사소통 참여자들은 입말에 비해 훨씬 여유롭고 넉넉하게, 충분히 준비하고 행위를 실행할 수 있다. 입말 맥락에서의 화자가 발화 행위가 즉시 일어나는 것과 달리, 글말 맥락에서 필자는 필자는 무슨 글을 쓸지 충분히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다. 이에 대해 매체론자 월터 옹은 부가적이고 반복적이며, 감정이입적이고 참여적인 구술 문화 정신역학과 달리 문자 문화 정신 역학은 문자 문화는 생활 세계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식을 구조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글을 다 쓴 이후에도, 끊임없이 퇴고하며 글을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특성은 필자뿐 아니라 독자 역시 공유하는 것이다. 입말 맥락에서 청자는 즉시 상대의 발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흘려보내야 하지만, 글말 맥락에서의 독자는 이해하지 못한 글을 몇 번이고 연거푸 다시 읽을 수 있다.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입말 맥락과 달리 글말 맥락은 참여자들이 자신의 의사소통 행위에 대해 훨씬 큰 통제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렵거나 난해한 글일 경우에는, 자신의 인식 속도에 맞게끔 글을 읽을 수도 있다. 아래의 표는 ‘얼굴을 마주보는 대화’를 기준으로 ‘기본적 현장’을 구성하는 특징들을 표로 정리한 것으로, Clark &Brennan (1991)의 표를 차용하여 변형한 것이다.범주특징 항목내용참여자: 현장성(scene presense)한 데 출연함 (copresence)참여자들이 똑같은 물리적 환경을 공유한다.볼 수 있음 (visibility)참여자들이 서로를 볼 수 있다.(비언어적 시각적 표지 제공)들을 수 있음 (audibility)참여자들이 서로 들을 수 있다.(반언어적 청각적 표지 제공)지체 없음 (no delay)참여자들이 서로의 행위를 두드러진 지체 없이 즉시 지각한다. (혹은 지각한다고 간주한다.)매체: 즉시성(instantaneity)곧장 사라짐 (evanescence)매체가 즉시 사라져 버린다.복구 불가능 (momentary)매체는 순간적으로만 존재하고,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복구할 수 없다.참여자-매체: 통제력(control)준비 없이 행함 (extemporaneousness)참여자들이 준비 없이 실시간으로 자신의 행위를 시행한다.교정 가능성 (remediability)참여자들이 자신의 행위를 교정할 수 있다.4. 온라인 채팅 의사소통 현장의 특징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전화나 대면 상황에서의 대화 대신 온라인으로 채팅을 하며 의사소통을 한다. 온라인 채팅은 개인 간의 사적인 대화뿐만 아니라 공적인 대화 현장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실제로 2024년 9월 29일 구인·구직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MZ 세대 118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화 통화 자체에 긴장, 불안, 두려움을 느끼는 콜 포비아 증상을 겪고 있다는 응답이 무려 39.3%에 달했다. 전화 통화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복수 응답) ‘생각 정리할 틈 없이 바로 대답해야 해서’ (61.6%),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게 걱정’ (47.6%) 등이 꼽혔다. 많은 MZ 세대들이 입말 현장에서 나타나는 ‘통제력’에 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가장 선호하는 소통 방식으로 ‘문자·메시지 앱 등 텍스트’를 꼽은 비중은 무려 74.8%로 ‘통화’ (11.0%), ‘대면 소통’ (12.8%)에 비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콜 포비아’로 대표되는 입말 현장에서의 의사소통에 대한 거부감과 소셜 미디어의 확산, 온라인 채팅의 보편화는 온라인 채팅이라는 새로운 의사소통 현장이 득세하고 있다는 것과 이는 기존의 입말·글말 현장과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기반으로 기존 의사소통 현장과 차별화되는 온라인 채팅 현장의 특성을 알아보고, 온라인 채팅 현장에서의 의사소통 양상을 알아봄으로써 매체가 의사소통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는 것이 본고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온라인 채팅이 어떤 의사소통 현장에 속하는지 따져보는 것은 조금 까다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온라인 채팅 현장은 입말 현장과 글말 현장의 특성을 고루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화 참여자들에 따라 그 특성이 유동적으로 변화하기도 하며, 기존의 의사소통 현장과는 상이한 특성도 지니고 있어 어느 한쪽에 속한다고 단편적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우선 온라인 채팅은 대화 참여자들의 의중에 따라 실시간 혹은 그에 준하게, 두드러진 지체 없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실시간으로 바로바로 읽고 답하는 경우도 있고,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한참 동안 채팅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가 한참 뒤에 의사소통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입말과 글말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이 참여자들의 현장성 (scene presense)임을 생각하면, 이는 기존 의사소통 현장과 매우 차별화되는 온라인 채팅 현장만의 특성이다. 이는 온라인 채팅 현장이 단순히 입말과 감성채팅 글말 현장 사이 회색 지대로 둘 사이 중간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완전히 입말처럼 때로는 완전히 글말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또한 대화 참여자들이 의사소통 내내 서로를 볼 수는 없으므로 ‘볼 수 있음’ (visibility) 면에서는 글말의 특성을 공유하지만, 특이하게도 ‘들을 수 있음’ (audibility)의 경우 음성 메시지 전송 기능을 전달할 수 있게 되어 부분적으로 입말의 특성 역시 지니게 되었다. 물론 주(主)는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음성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도 꽤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온라인 채팅 현장의 특성을 하나로만 단정하기는 어렵다.매체의 즉시성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온라인 채팅은 매체가 사라지지 않고 기록이 그대로 남는다. 심지어 가장 입말에 가까운 형태인 음성 메시지마저도 그대로 저장된다. 같은 음성 언어임에도 통상적인 입말 현장과는 달리 ‘곧장 사라짐’ (evanescence)이라는 특성을 공유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온라인 채팅은 의사소통 현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매체 면에서만큼은 글말의 특성을 그대로 지닌다고 볼 수 있었다. 문자를 통해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매체의 보존성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이하 ‘인스타 DM’으로 통칭)에서 보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기능이나, 카카오톡의 ‘모든 대화 상대에게서 삭제’ 기능이 있어 어느 정도는 입말처럼 매체의 기록을 남기지 않고 삭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글은 한번 퍼져서 필자의 손을 떠나면 다시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온라인 채팅은 비교적 빨리 기록을 지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텍스트나 음성 메시지를 캡처 혹은 다운로드를 통해 저장할 수도 있다. 이로써 기존에 의사소통 현장의 특성을 설명해주던 범주인 ‘즉시성’은 온라인 채팅에 한해서는 일관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졌다.마지막으로 통제력의 영역이다. 이 역시 대화 참여자들의 유형과 대화 상황에 따라 ‘준비 없이 행함’ (extemporaneousness)의 특성을 지니는 것으로도 볼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고민해서 오래 동안 글을 가다듬고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겠지만, 즉각적으로 바로 답을 줘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정 가능성 (remediability)’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앞서 언급된 메시지 삭제/취소 기능으로 인해 오히려 글말보다 더 많은 범위에서의 교정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편지나 신문 등 전통적 매체를 통한 글말은 필자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수도 없이 교정할 수 있지만, 정작 그 글이 필자의 손을 떠나 독자들의 손에 들어간 이후에는 한 자도 고칠 수 없다. 반면 인스타 DM의 경우 ‘전송 취소’를 통해 언제든 보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제한적인 형태의 교정이 가능하다.입말과 글말을 나누는 세 범주를 모두 살펴보았는데도, 온라인 채팅 현장의 경우 모든 범주에서 그 특성이 입말과 글말 둘 중 하나로 완전히 수렴하지는 않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온라인 채팅 현장은 글말 현장과 약간 더 유사한 것 같다는 것이 본고의 의견이다. 우선 음성 언어가 아닌 시각 기호인 문자가 의사소통의 주된 구현매체라는 점, 또한 본질적으로 매체가 즉시 사라지지 않고 기록을 남기다는 점, 현장성과 통제력의 경우 대화 참여자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글말 현장의 특성을 차용할 수 있다는 점, 반언어적 표현이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된다는 점 등이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한다. 다만 온라인 채팅 현장에서는 의사소통의 실현이 얼마든지 입말처럼 기능할 수 있고, 글말이 지닌 진중함과 무거운 사유가 온라인 채팅 현장에서는 다소 가벼워지는 등, 다소 변칙적인 요소가 산재해 있어 그러한 점이 온라인 채팅 현장을 기존의 의사소통 현장 중 하나로 지정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유보하게 만든다.흥미롭게도 온라인 채팅 서비스들은 그 이름에서부터 이미 입말의 느낌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채팅’의 ‘Chat’이라는 뜻 자체가 ‘담소를 나누다, 수다를 떨다’라는 뜻이고, 카카오톡은 아예 ‘Talk’이라는 데에서부터 입말을 지향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Direct Message’ 역시 글말보다 더 직접적으로 소통하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글말보다는 입말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우리의 삶과 문화는 점점 기체의 속성을 갖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기체는 가볍고 또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한다. 이러한 성격은 우리의 삶과 문화 전반에서 나날이 강조된다. 우선 가벼울수록 좋은 것이 되었다. 운동화나 노트북 그리고 핸드폰 등과 같은 상품들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이어트도 가벼움에 대한 욕망이다. 문학 작품을 비롯한 책의 내용도 공기처럼 가벼운 것이 선호된다. 인생도 신바람나게 가볍게 사는 것이 좋은 것으로 인식되고, 인간관계도 가벼운 것을 원한다. 톡톡 튀는 가벼운 말과 행동이 널리 사랑을 받는다. 무거운 윤리나 이념 그리고 진지한 비판은 환영받지 못한다. 그 대신 가벼운 개그가 사회적 소통의 주류를 이룬다. 우리 시대는 기체처럼 가벼운 개그의 시대이다. 가벼움의 미덕을 지닌 것이 아니면 대중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기체는 형체가 없다. 이것은 정보통신시대 또는 사이버세상의 특성이기도 하다. 공업의 시대에는 자원이 땅 속에 있었지만, 정보의 시대에는 자원이 공기처럼 하늘을 떠다닌다. 그것은 형체가 없으므로 아무런 제약 없이 공간을 이동한다. 컴퓨터나 통신수단들은 우리를 순식간에 지구 반대편의 세상으로 초대한다. 그런가 하면 각종 영상물들은 우리를 다양한 환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우리를 매혹하는 광고나 영상물 속의 수많은 이미지들도 기체와 다름없다. 그것들은 형체를 갖지 않으면서 기체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지배한다. 이미지들은 기체로 된 보석이다. 대중소비문화가 만들어 내는 현란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들로부터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 이남호, 「문화오염」, 『느림보다 더 느린 빠름』, 하늘연못, 1997, 93-95쪽. 이남호 평론가가 위 글에서 지적한 ‘기체의 속성’은 본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적 속성을 지칭하는 데에 사용되었지만, 의사소통 현장에 위 개념을 차용한다면 매체의 ‘즉시성’과도 관련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온라인 채팅 서비스 관련 업체들이 이러한 명명 행위를 통해 소비자와 대중에게 전파하고자 하는 프로파간다는 문자로 하는 채팅이 입말만큼 신속하고 편리하다는 것이다. “가벼움의 미덕을 지닌 것이 아니면 대중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는 그의 말처럼, 사람들은 점차 느리고 무겁고 진중한 글말 현장에서의 의사소통에 권태와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대신 입말처럼 빠르고 가볍고 산뜻한 의사소통 방식을 추종하기 시작했다. 양귀자 소설 『모순』에는 인생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서점에 가서 그에 관한 책을 사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 같은 시대에 책을 사는 어머니는 없을 듯하다. 그 대신 어머니는 네이버 블로그나 유튜브로 동영상을 볼 듯하다. 줄리아 차일드가 낸 몇백 쪽짜리 요리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시대 대신 흑백요리사들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이런저런 요리를 하고, 백종원이 유튜브에서 하나하나 영상으로 자세한 정보를 전달하는 시대가 되었다. 릴스와 쇼츠 등 각종 숏폼 콘텐츠의 범람 또한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시대’에는 의사소통 역시 ‘기체의 속성’을 띠듯 편리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온라인 채팅 서비스 업체들이 소비자들에게 주고 싶은 이미지는 결국 입말만큼 가벼운 글말이다.온라인 채팅 현장에서는 문장부호가 자주 생략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문장부호는 본디 글말 현장에 쓰이는 것이라 무겁고 엄숙하다. 문장부호 하면 연상되는 것은 맞춤법과 올바른 표기, 받아쓰기 등 복잡하고 철저하게 지켜야 할 듯한 어문 규범들이다. 그래서 문장 부호를 쓰는 것은 사람들에게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쓰는 듯한 인상을 주고, 학교에서의 작문 시간이나 취업 준비생 때의 자기소개서, 업무 보고서 등 고달프고 빡빡한 경험을 환기시킨다. 그래서 온라인 채팅 환경에서 문장부호는 직관적인 ?/!를 빼고는 거의 쓰이지 않으며 .을 쓰는 것은 진중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온라인 채팅은 글말처럼 다시 볼 수 있고,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존재함으로써 언제든 의사소통 행위에 참여할 수 있으면서도 행위 참여자들이 매체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아 ‘콜 포비아’처럼 부담이 없으면서도 입말처럼 편리하고 가벼운 것을 찾는 사람들의 요구에 대한 전자 문명의 응답이다. 그렇기에 온라인 채팅은 전자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며 문화 최전선에 선 의사소통 방식으로 자리매김하고, 그것의 궁극적 지향점은 행위 참여자들이 의사소통에서 기대하는 바와 같이, 행위의 편리성과 인지적 부담의 감소이다.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온라인 채팅은 입말과 글말 한쪽으로 정하기 어려운 면모를 지니고 있고, 실제로도 둘 모두의 특성을 적재적소에 이용하여 의사소통 행위 참여자들의 원활한 행위 참여에 편의성을 더해주는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온라인 채팅에서 메시지를 작성하는 사람은 ‘화자’나 ‘필자’ 대신 ‘송신자’, 메시지를 읽는 사람은 ‘청자’나 ‘독자’ 대신 ‘수신자’라는 용어를 사용해 지칭하고자 한다. 아래의 표는 의사소통 현장을 구분짓는 특징 항목들을 정렬해 놓은 뒤 입말 현장과 감성채팅 글말 현장, 온라인 채팅 현장이 각각 해당 특징 항목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여부를 정리한 것이다.범주특징 항목입말글말온라인 채팅참여자: 현장성(scene presense)한 데 출연함 (copresence)OXX볼 수 있음 (visibility)OXX들을 수 있음 (audibility)OXX (O, 음성메세지)지체 없음 (no delay)OXO/X매체: 즉시성(instantaneity)곧장 사라짐 (evanescence)OXX (삭제 가능)복구 불가능 (momentary)OXX (삭제 가능)참여자-매체: 통제력(control)준비 없이 행함(extemporaneousness)OXO/X교정 가능성 (remediability)XOO/X또한 기존의 의사소통 현장과 달리 온라인 채팅에서만 드러나는 고유한 특징도 있다. 온라인 채팅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음성 메시지뿐만 아니라 사진, 동영상, 이모티콘, 지도, 각종 파일, 링크 등 여러 기호 매체들을 전송할 수 있다. 입말 현장이든 글말 현장이든 언어와 문자를 사용한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이 언어 사용자들에게 선적으로 (linear) 해석되는 데 반해, 이러한 시각 커뮤니케이션 기호들, 이미지의 코드는 의사소통 참여자들에게 또다른 차원의 기호 체계의 매개를 통해 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빌렘 플루서는 이에 대해 이미지라는 코드는 ‘이미지 의식’ (conscience imaginative)이라는 새로운 의식을 형성함으로써 시간과 세계관에 대한 우리의 인식 체계에 영향을 끼치고, 문자라는 코드는 역사 시대의 선형적 사고를 빚어내며, 다시 디지털 코드를 통해 탈역사 시대의 새로운 기술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한 바 있다.온라인 채팅 현장은 이렇게 선형적 사고로 대표되는 문자와 가역적 사고로 대표되는 이미지를 모두 사용할뿐더러, 인간의 음성과 그 외 다른 청각 기호까지 재현한다. 또한 서비스 자체 내부 규약들과 여러 부가 서비스은 온라인 채팅 현장을 더욱 독창적인 의사소통 현장으로 만들어준다.5. 온라인 채팅 의사소통의 양태 – ① 말차례 교환온라인 채팅 현장의 고유하고 복잡한 특성으로 말미암아, 대화 참여자들은 성공적인 의사소통의 목표 달성을 위해 여러 전략을 취하였다. 새로운 의사소통 현장에서 행위 참여자들이 보여주는 커뮤니케이션 행위들은 의사소통 행위의 본질적 이해에 맞닿아 있음은 물론, 이를 위해 인간의 인식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며, 인간이 어떻게 사회적 관계를 구성해나가는지 역시 보여준다.여러 실제 의사소통 모델에서 드러나듯, 의사소통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많은 측면 중 하나는 시간이다. 의사소통 모델에서 행위 참여자들의 협동작업은 순차적으로, 차례차례 연속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시간상으로 동시적이거나 서로 겹쳐 있고, 시간의 경로에 의해 서로 부딪쳐 협동작업의 공동 목표 달성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은 특히 온라인 채팅 현장에서 의사 소통에 유의미한 변화를 끼치는 두드러진 요소로 기능한다.Garcia &Jacobs(1999)은 실제로 얼굴울 마주 보고 말을 주고받는 대화와는 달리 메시지로 주고받는 대화의 경우 행위 참여자들은 상대방이 말차례를 진행 중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행위 참여자가 둘뿐인 경우 송신자가 메시지 작성을 완결하여 보내고 나서야 다음 참여자가 말차례를 진행할 것이 ‘공식적으로’ 기대된다. 행위 참여자들이 셋 이상인 이른바 ‘단톡’과 같은 의사소통 현장에서는 누가 말차례를 진행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아래의 상황을 비교해 보자. (1) A, B, C, D는 함께 카페에 모여 대화를 하고 있다.A: 우리 화요일이랑 수요일 언제 만날까?B: 그런데 C는 수요일에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어?C: 응, 난 수요일은 힘들 것 같아.D: 그럼 화요일에 만나자. (2) A, B, C, D는 온라인 단체 채팅을 하고 있다.A: 우리 화요일이랑 수요일 언제 만날까?(B는 ‘그런데 C는 수요일에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어?’라는 메시지 작성 중)(C는 ‘난 수요일은 힘들 것 같아’라는 메시지 작성 중)D: 난 수요일이 편해. (1)에서 보듯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대화의 경우 한 사람이 말차례를 진행 중인 것을 명시적으로 알 수 있다. 따라서 A, B, C, D가 서로의 발화가 끝난 후에 발화 기회를 자연스럽게 얻어 말차례를 조정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렇게 발언 기회가 자연스럽게 조정되는 의사소통 맥락을 ‘원탁의 현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지칭한 바 있다. (1)에서는 B가 다음 말차례를 C로 지정하자, 이에 C가 다음 말차례를 진행하게 된다.반면 (2)와 같은 온라인 단체 채팅의 경우처럼 다수가 참여하는 온라인 환경에서는 누가 말차례를 진행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B와 C가 말차례를 진행 중이더라도, 행위 참여자들은 이 사실을 알 수 없다. 그래서 B가 다음 말차례를 C로 지정했음에도, 행위 참여자들은 누가 말차례를 진행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다음 말차례를 대화 참여자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여 자의적으로 입력한다. ‘원탁의 현장’에서는 말차례의 권리를 누가 가져갈 것인지가 서로에 의해 조정되었으나, 온라인 채팅에서는 행위 참여자들이 같은 물리적 환경 안에 없고, 말차례를 부여하는 비언어적 표지 또한 받지 못하므로 누가 말할 차례인지 조정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행위 참여자들이 ‘원탁의 현장’에서 발언 기회를 어떻게 배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 번째는 전통적 견해로, 화자들이 자신의 다음 발언기회를 개시하기 이전에 현재의 발언 기회가 다 끝나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발언기회 얻어내기가 수동적 반응임을 시사한다. 두 번째는 발언기회 배당 규칙이 ‘능동적 투영’이라는 견해이다. 이에 따르면, 화자들은 자신의 발화 완결을 투영하고, 그 지점에서 시작할 다음 발언기회를 적시에 맞춰 주기 위하여 현재의 발언기회로부터 나온 증거를 이용한다.‘원탁의 현장’에서 발언기회가 놀랍게도 자연스러우면서도 신속하게 바뀐다는 사실은 두 번째 견해를 지지한다. Beattie &Barnard (1979)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 대화 상황 중 전체 화자 바뀜의 34%가 0.2초 미만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특정 자극에 대해 0.2초도 안 되는 시간에 즉각적으로, 그것도 매우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은 인지적 차원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 실제 대화에서는 발화가 미처 완결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화자가 발언 기회를 얻어 발언하는 등 발언에서 겹침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게 발화 행위가 완결되기 전에, 발언기회를 시작하는 현상은 첫 번째 견해에 대한 반례가 된다. 발언 기회 얻어내기가 단순히 자극에 대한 수동적 반응이라면 특정 자극(청각을 통해 인지한 발화의 완결)이 존재하기도 전에 반응을 한다는 행위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원탁의 현장’에서 발언기회 얻어내기는 단순히 발화가 끝나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과정이 아니다. 행위 참여자들은 여러 증거들을 기반으로 능동적으로 발화 완결을 예상하며 발언기회를 얻어내는 것이다.그렇다면 행위 참여자들은 도대체 어떤 증거를 수집해서 투영하길래, 발언기회의 끝부분을 미리, 그것도 꽤나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지적 연구가 더 필요하겠지만, 청자가 발언기회를 얻기 위해서 많은 정보 자원에 의존하는 것은 확실하다. 대표적인 것이 ‘눈 응시, 몸짓 시늉, 억양’ 등의 비언어적·반어언어적 기호들이다.주목할 점은 ‘원탁의 현장’이 지니는 의사소통 현장의 특성들은 이렇게 많은 정보맥락을 부여해주는 것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행위 참여자들이 모두 물리적으로 같은 환경 안에 있으므로 ‘볼 수 있음’ (visibility)과 ‘들을 수 있음 (audibility)’에 따라 서로의 비언어적·반어어적 기호 역시 동시다발적으로 함께 수신한다. 우리는 대화할 때 표정이나 몸짓 등의 신체언어로 음성언어를 보완한다. 소리 바깥의 언어라는 뜻에서 침묵의 언어라고도 불리는 신체 언어는 팬터마임이나 ‘몸으로 말해요’ 게임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의사소통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사람의 몸짓으로 이뤄진 언어는 소리 연쇄로 이뤄진 자연 음성언어에 견줄 만한 문법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비록 신체언어의 형태소인 ‘키님’이 음성언어의 형태소만큼 다양하지는 않아 신체언어가 음성언어의 정교성을 따라잡는 것은 요원해 보이지만, 언어 일반의 표현적 기능에서 신체언어는 음성언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는 키닉스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데, 음성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만큼 크지 않고 메시지는 압도적으로 음성 언어 바깥에서 교환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버드위스텔은 의사 소통에서 어휘가 감당하는 비중이 30~35%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으며 심리학자 앨버트 메라비언은 대면 커뮤니케이션에서 어휘가 차지하는 비중은 7%이고, 목소리 톤은 38%, 신체 언어는 무려 55%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주장했다. 이 수치의 적절성에 대한 논의는 뒤로 하고서라도, 인지심리학자들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비언어 요소가 언어 요소를 압도하고 있다는 데에 대개 동의한다.신체언어가 전달하는 정보 중에서는 말차례의 부여 및 거부도 있다. 가령, 누군가가 말을 들을 때 눈도 마주치지 않고 딴청을 피우고 있다면, 더 이상 나에게 얘기하지 말라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대화 중 누군가가 눈을 반짝이며 몸을 앞으로 숙이며 다른 사람들을 쳐다본다면 그것은 그가 말차례를 갖고 싶다, 발언 기회를 얻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또한 ‘원탁의 현장’에서는 ‘지체 없음 (no delay)’에 따라 서로의 메시지의 송신과 수신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그 사실은 행위 참여자 모두가 공유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말차례의 기회를 누가 가져갈 것인지가 비교적 명확하다. 따라서 성공적인 의사소통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대화 참여자들은 다른 참여자의 말이 끝나면 적절한 시간적 간격 내에 그와 관련된 언표 행위를 하려고 노력한다. 가령, 누군가가 무엇을 묻는다면 그에 관한 대답을 할 감성채팅 때 너무 뜸을 들여서는 안 된다. 시간적 간격이 너무 크면 행위 참여자들은 그것을 의사소통에 참여하기 싫다는 거부 내지는 외면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반면, 온라인 채팅 상황에서는 풍부한 맥락적 정보도 없고, ‘지체 없음 (no delay)’의 특징이 확정적으로 부여되는 것도 아니다. 메시지의 송신과 수신은 행위 참여자가 타이핑을 하는 속도에 따라 거의 바로 일어날 수도 있고, 혹은 한참을 두고 일어날 수도 있다.위에서 우리는 입말 현장에서 발언 기회, 말차례를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느냐에 따라 ‘원탁의 현장’, ‘무대의 현장’, ‘기울어진 탁자’ 현장을 예로 든 적이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 채팅 현장은 어떠한가? 온라인 채팅 현장은 원탁의 현장처럼 누구나 발언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누가 발언 기회를 획득하였는지 누가 말차례를 진행 중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독일의 작가 미하일 엔데의 작품 「니젤프림과 나젤큐스」에는 나젤큐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나젤큐스와 함께 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다가 그 애가 떠나고 나면 그제야 그 애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온라인 채팅 현장 역시 나젤큐스와 비슷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송신자가 텍스트를 생성하는 동안 수신자는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생성이 완료될 때에서야 비로소 수신자는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따라서 본고는 해당 맥락에서 온라인 채팅 현장을 ‘무지의 현장’이라 부르고자 한다.발언기회 얻어내기가 ‘원탁의 현장’에서는 행위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능동적 투영을 통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온라인 채팅과 같은 ‘무지의 현장’에서는 모든 정보가 차단된 채 발언 기회를 얻어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 참여자의 수가 많을수록 각 참여자들은 발언 기회를 얻는 것에 더 신중하고 소극적으로 임하게 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말처럼, 발언기회가 많은 사람들에게 배당되면 대화는 공통 화제나 주제를 잃고 논의의 초점이 분산되어 버린다. 그러면 그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행위 참여자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라이스가 제시한 협동 원리(cooperative principle) 중 관련성(relevance)의 격률이 어겨지게 되기 때문에, 행위 참여자들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이렇게 초점이 분산되어 버리면, 다른 행위 참여자들은 좀처럼 발언 기회를 얻으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발언 기회를 얻더라도, 무슨 발언을 하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로, 지금까지의 발언과 상관없는 생경한 발언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논의의 초점이 더욱 분산되어 문제가 악화된다. 둘째로, 다수의 말차례완결 단위(multiple TCUs) 중 하나의 말차례만 선별해 반응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나왔던 논의 중 하나를 정해 그에 관련된 말을 하는 경우인데, 이때 선택받지 못한 담론들은 의사소통에서 배제된다. Schönfeldt &Golato (2003)는 다수가 참여하는 온라인 상에서의 말차례의 교환은 다음 참여자가 반응하지 않는 경우 실패한 경우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그렇기에 온라인 채팅 현장에서의 의사소통 행위 참여자들은 ‘무지의 현장’ 속에서 충분한 맥락 정보를 얻지 못해 자의적으로 입력되는 발언 기회의 배분이 의사소통 전체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예상하고 이에 대한 기제를 몇 가지 마련하였다.먼저 대화 참여자들이 나름의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를 지키면서 반응하고자 하는 상대의 이름을 호명하거나, 상징이 되는 표식(symbol)을 이용함으로써 다음 말차례를 지정하고, 대화의 응집성(coherence)을 추구하는 방법이 있다. (3) 단체 그룹 채팅방프로도: 이제 슬슬 여행을 떠나고 싶어.샘: 프로도 나리, 어디로 떠나고 싶은데요?프로도: 글쎄? 간달프,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요?간달프: 나는 서쪽 항구로 갈 예정이네. 함께 가겠나?아라곤: 가기 전에 말 분양하고 가셔야죠.간달프: @레골라스 자네가 가지는 게 좋겠는데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레골라스: 너무 좋죠.간달프: 그럼 보름 안에 자네를 찾아뵙겠네.레골라스: 네, 감사합니다.레골라스: @김리 ^^김리: 뾰족귀 녀석이 말 분양받아 신났군. (3)에서 보듯, 행위 참여자들은 상대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발언 기회를 특정한 인물에게 넘긴다. 레골라스가 김리를 언급 (@ 김리)한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카카오톡에서 상대방을 언급하면 해당 인물에게 언급되었다는 식의 알람이 간다. 이는 보다 적극적으로 말차례를 넘긴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급 기능은 질문, 명령, 확인, 진술 요구 등 상대방의 반응이 필요할 때 자주 사용된다.이때 호명되지 않은 사람은 되도록 다른 논의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 요청된다. 왜냐하면 아직 해당 주제가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차례를 넘겼기 때문에 넘겨받은 행위자가 발화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해당 참여자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또 앞서 언급했듯, 온라인 채팅에서의 말차례 연속체는 서로 내용적 연관성이 없는 대화들이 중간에 끼이는 양상을 보인다. 서로 관련된 첫 번째 인접쌍과 두 번째 인접쌍이 바로 인접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연관성이 없는 다른 대화가 삽입되어 ‘말차례 인접성(turn adjacency)’이 방해받는 것이다. 이는 대화의 참여자가 다른 참여자의 말차례 진행 여부를 알 수 없기에 스스로 다음 말차례를 결정해 진입하거나 끊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준실시간 상호작용에서는 말차례 질서가 깨지며 대화의 응집성마저 깨지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온라인 채팅 현장에 익숙한 대화 참여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고 관련 있어 보이는 발언을 서로 연결해 이해한다. 시간 순서대로 발화를 읽되, 준실시간에 가까울 경우 말차례의 질서가 깨질 수 있음을 이해하고 인지 체계 내에서 마치 퍼즐을 맞추듯 상관된 인접쌍들을 서로 관련지어 유기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면 말차례 연속체가 논의가 흩어져 무질서하고 무의미하게 연속된 텍스트의 단순한 결합이 아닌 서로 다른 대화가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이해해 나름의 응집성을 갖추게 된다. 특히나 카카오톡의 ‘답글’ 기능은 시각적으로 대응되는 인접쌍을 연결할 뿐 아니라 누르면 해당 인접쌍과 연결되는 하이퍼링크성을 지녀 더욱 응집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6. 온라인 채팅 의사소통의 양태 – ② 퇴장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무지의 현장’ 속에서 발언 기회를 ‘원탁의 현장’처럼 배당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뿐더러, 그라이스의 협력 원리를 위반하게끔 하여 의사소통을 파국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심지어 대인 관계에 있어 갈등의 씨앗이 될 여지도 있다. 그런데 이 못지않게 복잡하고 부담스러운 것이 바로 대화로부터의 퇴장이다.‘원탁의 현장’, ‘무대의 현장’, ‘기울어진 탁자의 현장’, ‘무지의 현장’ 등 입말과 글말을 막론하고, 사적인 상황에서나 공적인 상황에서나 모든 의사소통 현장들에서 중요시되는 것이 바로 퇴장이다. 하물며 문학 작품이나 영화와 같은 서사물에서도 뜬금없이 끝내면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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